[프레스데일리 조남준 기자] 5월 2일 0시, 대한민국은 헌정 사상 유례없는 정치 실험에 돌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한덕수 총리)의 사퇴에 이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상목까지 전격 사의를 표명하고 사표가 수리되면서, 국정의 최고 책임은 국무위원 서열 4위인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넘어갔다. 공식 직함은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흔히 말하는 ‘대행의 대행의 대행’, 즉 ‘대대대행 체제’의 출범이다.

이번 체제는 6월 3일 조기대선까지 약 33일간 유지될 전망이다. 문제는 단지 법적 지위나 명칭이 아니라, 권력 공백과 정국 혼란이 불러온 후폭풍이다.

 


■ 최상목 사퇴로 ‘탄핵 무력화’… 절묘한 타이밍, 정치적 회피 논란

지난 5월 1일 밤,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최상목 경제부총리 탄핵소추안은 표결 직전에 무산됐다. 최 부총리가 오후 10시 28분 사의를 표명했고, 불과 20분 뒤 한덕수 권한대행이 이를 수리하면서, 탄핵 대상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우원식 국회의장은 “투표를 중지하겠다”고 선포했다. 이로써 국회법에 따라 무기명 투표는 개표조차 되지 않았다.

최 부총리에 대한 탄핵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행정적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 지난 3월 발의된 것이었다. 하지만 최 전 부총리는 “경제 여건이 엄중한 상황에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점에 유감을 표한다”며 정치적 책임을 피하는 방식으로 퇴장했다.

일각에서는 “전례 없는 정치적 회피”라는 비판과 함께 “국회 탄핵권의 실효성을 무력화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상 탄핵을 ‘수리 전 사퇴’라는 전략으로 무력화한 것이다.

■ ‘대대대행 체제’ 돌입… 국정 운영·헌정 질서 혼란 불가피

이주호 사회부총리는 2일 0시를 기해 국정 전반을 책임지는 대통령 권한대행 지위를 갖게 됐다. 그는 즉시 각 부처에 긴급지시를 내리고, 국정 운영 공백 최소화에 나섰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모두 없는 상황에서, 교육부 장관 출신의 이 부총리가 통상·경제·안보 등 복합위기 상황을 조율할 수 있을지 의문도 제기된다.

더 큰 문제는 국무회의 구성 요건이다. 헌법 제89조에 따라 국무회의는 대통령과 15인 이상의 국무위원이 참석해야 성립되는데, 현재 국무위원 수는 14명으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추경, 외교안보 정책, 국정 현안 의결 등이 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논란이 예상된다.

■ 탄핵 정국 재점화… 검찰총장 탄핵안도 발의

정국은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 민주당은 최상목 탄핵 무산 직후,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안을 추가 발의하며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심 총장은 “허위 사실에 기반한 탄핵”이라며 “공정선거와 법치를 훼손하려는 정치적 공격”이라고 맞섰다. 앞서 대법원이 이재명 대선 후보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판결 역시 야권을 자극한 상태다.

민주당은 이를 “사법 쿠데타”로 규정하고 “사법 권력의 정치 개입”이라고 비판하며 강경 노선을 예고했다. 행정부를 향한 탄핵 공세와 함께, 사법부에 대한 전면적 불신을 공식화한 셈이다.

■ 헌정사상 초유의 위기… 삼권 간 신뢰 붕괴

대통령과 총리가 모두 공석인 상황, 국회의 탄핵이 정치적으로 무력화되고, 사법부 결정에 대한 입법부의 공개 반발이 이어지는 현 상황은 단순한 정쟁을 넘어 헌정 체계의 균열을 의미한다. 정치와 법, 행정의 경계가 무너지는 이 국면에서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결국 국민일 수밖에 없다.

‘대대대행 체제’는 단순한 권한 위임을 넘어선 헌법 질서의 시험대다. 이 체제가 무사히 6월 대선을 넘길 수 있을지, 혹은 권력의 진공 상태가 더욱 큰 정치적 혼란을 낳을지—대한민국 정치의 다음 장은 지금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