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데일리 조남준 기자] 산업재해 역학조사와 직업병 연구를 담당하는 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전문의 인력 전원 사직으로 인해 보건복지부의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 수련기관 지정이 취소될 위기에 놓였다. 전문인력 양성과 역학조사 기능이 동시에 마비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김주영 의원(더불어민주당, 김포시갑)이 21일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연구원은 내년 2월까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2명을 충원하지 못할 경우 수련기관 지정이 취소된다. 이미 전문의 결원이 발생했지만, 정부의 의료개혁 상황을 고려해 지정취소는 한시적으로 유예된 상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1987년 원진레이온 사건을 계기로 설립된 기관으로, 직업병 조사·연구와 산재 예방 정책을 담당해왔다. 1994년부터는 공공 영역에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를 양성하는 수련기관으로 기능해 왔으며, 매년 1명 이상 전문의를 배출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연구원 소속 전문의가 모두 퇴사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에 따르면, 수련기관으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1명 이상의 지도전문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현재 연구원에는 지도전문의가 단 한 명도 없는 상태다.
정부는 일시적 유예조치를 통해 내년 2월까지 인력 충원 시 지정 유지가 가능하도록 했지만, 2022년 이후 세 차례의 전문의 채용공고에도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연구원은 울산 근무의 불편함을 완화하기 위해 재택근무(주 1회 출근) 제도 등을 도입했지만 인력 확보에는 실패했다.
수련기관 지정이 취소될 경우 연구원은 더 이상 전공의를 임용할 수 없게 되며, 현재 소속된 전공의들도 타 병원으로 이동해야 한다. 실제로 올해 5월, 전문의 결원으로 인해 4년차 전공의 1명은 한양대학교병원으로, 3년차 1명은 인하대학교병원으로 이동수련을 진행했다. 현재 남은 2년차 전공의 1명도 한시적 파견 상태로, 2026년 3월부터 이동수련이 예정되어 있다.
전문의 공백은 연구원의 공적 기능 수행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산재 역학조사 처리기간은 2020년 441.4일에서 2023년 954.6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024년 들어 다소 감소했으나, 올해 8월 기준 이미 698일에 달해 정상화가 요원한 상황이다.
또한 야간노동자 등 특수건강검진 대상자 증가와 내년도 건강관리카드 제도 확대에 따라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으나, 인력난으로 인해 공공산업보건체계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의사 채용난의 배경에는 낮은 급여 수준과 지방근무 기피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2023년 실시한 연구에서도 “민간기관 대비 낮은 연봉이 전문의 수급의 주요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보수 현실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주영 의원은 “수련기관 지정이 취소되면 단순히 교육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역학조사와 산업보건체계가 흔들릴 심각한 사안”이라며 “지방근무나 낮은 급여 등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지 않으면 전문인력 확보는 불가능하다. 국회 차원에서도 처우 개선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