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데일리 한종갑 기자] 친밀관계 살인의 10건 중 6건 이상이 가정폭력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여전히 ‘가정의 평화 회복’을 이유로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 중심의 미온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16일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 8월까지 발생한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 1,966건 중 375건(19.07%)이 교제폭력·가정폭력·스토킹 등 친밀관계폭력에서 기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230건(61.3%)은 가정폭력으로 인한 범행이었다.
이는 단순 폭행이나 상해치사 사건이 통계에서 제외된 점을 고려할 때, 가정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실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 검거율 ‘11.5%’… 처벌보다 ‘보호’ 택하는 수사기관
같은 기간 가정폭력 신고는 매년 늘었지만 검거율은 오히려 감소했다. 2022년 19.9%였던 가정폭력 검거율은 올해(1~8월) 11.5%로 8.4%포인트 하락했다.
올해 검거된 가정폭력사범 가운데 기소된 인원은 28.1%에 그친 반면, 36.8%는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돼 형사처벌을 면했다. 경찰과 검찰이 ‘가정유지’ 명분으로 처벌보다 상담·위탁 등 보호조치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용혜인 의원은 “경찰이 관계성 범죄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가정폭력 사건을 경범죄 수준으로 다루고 있다”며 “친밀관계살인의 절반 이상이 가정폭력에서 비롯되는 만큼 수사기관의 관행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불처분 46%… 피해자 보호도, 재범 방지도 못한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처리된 가정보호사건의 46.2%는 불처분 결정이 내려졌다. 보호처분이 내려진 사건 4,398건 중에서도 46.5%가 단순 상담위탁에 그쳤으며, 피해자와 가해자를 실질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접근금지·감호위탁 처분은 전체의 0.29%**에 불과했다.
실제 피해자 지원 현장에서도 이러한 제도적 한계는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제공한 사례에 따르면, 반복적 폭력을 견딘 피해자가 수차례 경찰에 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돼 폭력이 재발하는 일이 빈번했다. 일부 피해자는 처벌 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가해자가 반성문을 제출하거나 합의서를 제시했다는 이유로 ‘불처분’ 결정을 받기도 했다.
■ “가정폭력처벌법 전면 개정해야… 피해자 보호 중심으로 전환”
용혜인 의원은 “가정보호사건 제도는 피해자 보호에도, 재범 방지에도 전혀 효과가 없다”며 “가정폭력처벌법상 보호처분 제도를 폐지하고 형사처벌 원칙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가정폭력을 여전히 ‘부부싸움’이나 ‘사랑싸움’으로 치부하는 법제와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교제폭력·스토킹 등 친밀관계폭력 전반에 대한 실질적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의 목적을 ‘가정 회복’에서 ‘피해자 보호’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 의원은 지난 9월 8일 ‘친밀관계폭력처벌법’ 전면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보호처분 및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폐지 ▲피해자 보호 강화 ▲신고 초기대응 개선 등을 골자로 하고 있으며, 가정폭력에 대한 형사사법 체계의 실질적 개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용혜인 의원(기본소득당)은 “가정폭력처벌법의 취지가 가정 유지에만 머무는 한, 또 다른 피해자는 계속 생겨날 것이다. 이제는 피해자 보호 중심의 법과 수사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