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데일리 한종갑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발표된 6월 4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 앞 광장에 초대형 ‘눈’이 등장했다. 이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전 세계 시민 6,472명의 초상이 담긴 상징적인 깃발이었다. 이 깃발은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한국 정부와 새 대통령 당선인을 향해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날 퍼포먼스는 국내외 1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플뿌리연대(플라스틱 문제를 뿌리뽑는 연대)’가 주최했다. 연대는 깃발 퍼포먼스를 통해 플라스틱 오염 문제의 핵심 해결책인 ‘생산 감축’을 골자로 한 강력한 국제 협약 채택을 촉구했다.
퍼포먼스의 중심에는 가로 30미터, 세로 20미터의 거대한 깃발이 있었다. ‘#WeAreWatching(우리는 지켜보고 있다)’라는 문구가 적힌 이 깃발은 스위스 예술가 댄 아처(Dan Acher)와 그린피스가 협업한 작품으로,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얼굴로 구성됐다.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간 협상위원회(INC5) 당시에도 부산 상공에 띄워졌던 바로 그 깃발이다.
올해 세계 환경의 날은 28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며, UNEP(유엔환경계획)과 환경부가 공동 주최한다. 주제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Beat Plastic Pollution)’. 행사 개최지인 한국의 책임감 있는 역할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배경이다.
하지만 플뿌리연대는 한국 정부의 행보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지난해 부산 INC5 회의를 계기로 국제적 관심을 끌었던 한국은 협약문 채택에 실패하며 개최국으로서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환경부 장관이 ‘생산 감축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음에도 구체적 행동이 따르지 않았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이날 발표된 플뿌리연대의 성명서는 이를 강하게 지적했다. “정부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라는 핵심 쟁점에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는 회원국들과 시민사회, 세계 시민을 실망시킨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연대는 새로운 정부에 마지막 기회를 강조했다. “세계 환경의 날 개최국이자 직전 협상 회의(INC5)의 주최국, 우호국연합(HAC) 소속국으로서 한국은 오는 8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릴 INC5.2 회의에서 생산 감축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실행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는 8월 예정된 INC5.2 회의는 지난해 결렬된 INC5 회의의 연장선이다. 현재까지 100여 개국이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포함한 강력한 협약을 지지하고 있으며, 협상 결과에 따라 향후 국제사회가 플라스틱 문제에 대응하는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환경의 날’, 그리고 ‘대한민국 차기 정부 출범’이라는 두 상징이 교차하는 시점에 펼쳐진 이번 퍼포먼스는 단순한 기념 이벤트를 넘어, 새로운 정책 방향을 요구하는 전 세계 시민사회의 경고로 읽힌다. 제주 하늘 아래, 6,472개의 눈이 한국 정부와 전 세계의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