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데일리 조남준 기자] 서울 25개 자치구 구의회의장단이 사용한 업무추진비 일부가 정치활동에 쓰였다는 시민단체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적 예산이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집회’ 인근에서 사용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업무추진비의 정치적 전용과 사적 사용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 구정감시서울네트워크(이하 구서넷) 는 13일, 2024년 1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서울 25개 자치구 구의회의장단의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12월 ‘불법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에 이르는 시기 동안 지방의회가 본연의 책무를 다했는지 검증하기 위해 진행됐다.

■ 한남동 인근서 ‘정치성 지출’ 정황

구서넷에 따르면 일부 자치구 국민의힘 소속 구의원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한남동 관저 인근 식당 등에서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내역이 확인됐다.

특히 사용 시점이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집회가 열린 날과 겹쳐, 정치적 집회 참석 이후 예산이 집행된 것으로 의심된다는 지적이다.

이들이 이용한 업소는 모두 윤 전 대통령 관저에서 도보 10분 이내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당시 체포 반대·촉구 집회가 집중적으로 열리던 시기와 맞물린다.

구서넷은 “공적 예산이 특정 정치 세력의 활동에 동원됐다면 지방의회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이자 명백한 예산 전용”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일부 구의회 관계자는 “의정 관련 간담회나 인근 주민과의 협의 자리에서 발생한 식비일 뿐, 정치행사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 새벽·심야 시간대 주점·호프서 ‘의정활동’?

조사 결과, 일부 구의회의장단은 새벽 6시 이전이나 밤 11시 이후에도 업무추진비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 업소에는 파리바게뜨, 호프집, 와인바 등 업무와 무관한 곳이 다수 포함됐다.

예컨대 금천구 교섭단체대표(국민의힘)는 오전 6시 44분 해장국집에서, 서초구 행정복지위원장은 밤 10시 47분 포장마차에서 간담회를 진행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에 대해 구서넷은 “공적 회의가 불가능한 시간대의 반복적 지출은 사적 사용의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며 “주민 세금이 개인 친목이나 유흥성 소비에 쓰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일부 구의회 관계자는 “지역 민원인이나 단체와의 협의가 특정 시간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업무와 무관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 1인당 12만 원 식사·기부성 집행도

성북구의 한 위원장은 4명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49만 원을 사용해 1인당 12만 원이 넘는 식대를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의회는 대한적십자 특별회비(80만 원) 등 기부성 지출까지 업무추진비로 처리한 사례도 있었다.

또한 강남구, 노원구, 성북구 등 여러 구의회는 특정 식당을 20회 이상 반복 이용한 것으로 확인돼, 업체 유착 및 편의 제공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한 구의회 관계자는 “의원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 업무 지역 내에 한정돼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 “업무추진비, 사실상 의원 개인 쌈지돈”

이번 분석에서 구서넷은 다수 구의회가 집행 인원과 장소 주소 등 필수 항목을 누락하거나 비공개 처리한 사실도 지적했다.

특히 강서구·도봉구·강남구 등 일부 구의회는 관련 내역 공개를 거부해 현재 정보공개청구 절차가 진행 중이다.

구서넷 관계자는 “주민에게는 1만 원짜리 다과비 영수증도 요구하면서, 구의회는 수십만 원의 식비를 증빙 없이 쓰고 있다”며 “업무추진비가 의원들의 ‘쌈지돈’처럼 관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 “공개·증빙·상한제 도입 시급”

구서넷은 구의회 업무추진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도 개선을 제안했다.

▲공개 양식 통일 및 월별 의무공개 ▲ 1인당 지출 상한선 명문화 ▲사전 지출 결의서 및 회의록 의무화 ▲ 영수증·결제내역 등 증빙자료 공개 의무화 ▲ 구의회·구청 업무추진비 통합 공개 플랫폼 구축

구서넷은 “공적 예산의 집행은 민간보다 더 엄격해야 한다”며 “투명한 공개 없이는 업무추진비가 앞으로도 불신과 의혹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방의회 “통상적 의정활동… 과도한 해석” 입장도

일부 구의회는 구서넷의 분석 결과에 대해 “사실관계가 다소 과장됐다”고 반박했다.

서울의 한 구의회 관계자는 “의정활동 과정에서 지역 기관·주민과의 협의나 현장 간담회는 불가피하다”며 “단순히 시간이나 장소만으로 사적 사용으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 제도 개선 필요성엔 공감대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였던 만큼, 구의회의 업무추진비 집행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이 ‘의정활동’이라는 명목으로 집행되는 만큼, 이제는 지방의회의 자정 노력과 제도적 개혁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관련 전문가는 “예산 집행의 투명성을 강화하되, 의정활동의 자율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제도적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