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데일리]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달려가는 한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부딪히고 있다. 전력망에 이미 들어와 있는 재생에너지가 출력을 제어당하고, 신규 설비는 계통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화력발전기의 최소발전용량’이라는 제도적 장치에 있다.
최소출력 고정된 화력, 재생에너지의 발목을 잡다
전력 계통은 실시간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화력발전기는 기술적·환경적 이유로 일정 수준 이하로 출력을 낮출 수 없으며, 이를 ‘최소발전용량’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 최소출력이 전체 전력 공급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남는 전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설비의 출력을 줄일 수밖에 없는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
태양이 내리쬐고 바람이 잘 부는 날일수록 오히려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이 멈춰야 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는 것이다. 기술적 한계라기보다는 제도 설계의 문제다. 이로 인해 재생에너지 확산은 ‘고속도로’에 올라타지도 못하고 과속방지턱 앞에 멈춰 서 있는 상황이다.
제주에서 먼저 시작된 변화, 왜 육지는 정체 중인가
희망적인 사례도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제주도에서는 이미 화력발전기의 최소발전용량을 하향 조정하는 제도 개선이 이뤄졌고, 그 결과 출력제어 빈도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육지 계통에서는 여전히 이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제도적 개선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도입하지 않는 것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 재설계'다
세계 주요국들은 이미 계통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소발전용량을 30~40% 수준으로 낮추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이런 흐름에 동참해야 한다. 전력거래소는 기존 화력발전기의 기술적 특성과 환경 규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소출력 기준을 재정립하고, 운전범위가 넓은 발전기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유연한 계통 운영을 유도해야 한다.
물론, 저부하 운전은 설비 마모나 효율 저하 등의 우려가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준이 기술적 한계치를 과도하게 상회한다는 지적도 많다. 단계적이고 탄력적인 기준 조정이 가능하도록 설비별 운전 특성과 환경 영향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기존 보상체계 역시 실효성을 갖도록 손질해야 한다.
정보 비공개, 제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투명성 부족이다. 발전기별 최소발전용량과 그 산정 기준, 검증 이력 등 핵심 정보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어가 정당한지 여부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이러한 불투명성은 시민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 정책 수용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발전기별 최소발전용량과 필수운전 발전기의 지정 사유, 검증 절차를 외부에 공개하고, 발전사별로 ‘최소발전용량 이하 운전 시 출력 하한치’ 등의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출·검증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 이제 ‘유연한 화력’이 답이다
재생에너지는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 이제 제도적 벽에 가로막혀 있다. 이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기존 계통 운영 방식의 재설계가 필수다. 변화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력발전기의 최소발전용량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그 과정에서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며, 유연성을 유도할 수 있는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일이다. 에너지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시대적 의무다. 정책 결정자들은 지금이 그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