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문화를 외칠 때 고민할 사안 : 동조(Conformity)
박동언 안전보건공단 디지털계획부장
프레스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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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3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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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스데일리] 한국에서 재채기를 할 때는 거침없었다. 재채기가 나오면 그냥 시원하게 소리 내어 하면 되었다. 2016년 미국 유학을 갔다. 며칠 사이 재채기를 소매로 가리고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아내가 웃는다.
한국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천장을 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미국에서는 웃으면서 눈인사를 하였다. 단지, 미국 도착 며칠 사이 벌어진 일이다. 이후 미국에서 2년간 주욱 그랬고 한국에 와서도 1년은 그래 왔다. 지금은 다시 미국 가기 전 행동을 하곤 한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았다. 사람이 간사해서일까? 결론은 그 집단과 사회에서 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다.
아직도 안전모, 안전화를 착용하지 않고 일하는 근로자를 많은 소규모 공사현장, 사업장에서 볼 수 있다. 축사 지붕 등 높은 곳에서 작업발판이나 안전대 등 떨어짐 예방조치 없이 작업하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사람이 넘어지고 떨어진다. 용접을 하면서 소화기도 없이 작업한다. 화재, 폭발로 많은 근로자가 다친다. 뉴스나 신문에서 간간히 나오는 소식들이다. 법으로 강제하고 지도단속을 한다 해도 관련 소식은 여전하다. 왜 그럴까?
미국에서 소매로 가렸지만 한국에서는 거침없던 재채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은 집단과 사회에서 혼자만 튀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과 흐름에 맞추어 자신도 그렇게 행동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 관점으로 동조(conformity) 현상이다. 동조는‘특정인이나 집단으로부터 직·간접 압력을 받아 스스로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는 것’이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객실 내 연기가 가득차도 승객들은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대표적인 동조 현상이다. 일상에서 신호등을 건널 때 파란불이 채 켜지기도 전에 남들이 건너려는 걸 보고 무심코 따라 한다. 역시 동조 현상이다.
사업장, 공사 현장에서 위험하지만 기존 방식대로 일하는 이면에는 동조현상이 있다. 주변 근로자도 다른 비슷한 현장에서도 그렇게들 일한다. 외국에서도 알고 있는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일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그렇게 보고 배운다. 동조는 편하다. 타인을 보고 따라하면 시간을 절약하고 중간 지대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위험 부담도 적다. 동조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린 아이들은 어른들이나 또래 행동을 보고 따라하며 성장한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다. 문제는 개인이 무심코 따라하는 동조가 올바르지 않을 때 변화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기존 행동을 고수할 때이다.
2022년 현재 대한민국은 OECD 38개 국가 중 산재사고사망자 828명, 만인율 0.43퍼밀리아드로 34위를 기록한 산재 후진국이다. 산재 후진국 오명을 씻어야 할게다. 안전보호구 착용은 기본이고 떨어지지 않게, 끼이지 않게 일해야 한다. 다치지 않고, 죽지 않게 일해야 한다. 현장이 바뀌어야 한다. 우선,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동조현상을 먼저 이해하고 걷어내어야 현장은 바뀐다.
대한민국은 관계문화다. 미국은 개인문화다. 일본은 집단문화다. 관계문화는 그룹 내에서 타인 취향과 선택에 따라 내 의견을 바꿀 준비가 돼 있다. 그래서 동조가 많다. 고착된 동조현상은 결정적 동인과 변혁이 없으면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변화가 시작된다면 그 힘은 폭발적이다. 긍정적인 동조현상이 기하급수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이내믹한 대한민국이고 그 힘은 2002월드컵에서 표출되었고 전 세계는 놀랐다.
안전한 일터를 위한 변화의 시작과 중심은 사업주이어야 한다. 현장 위험을 만들고 통제하는 주체임과 동시에 영향력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사업주는 안전하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근로자들이 동조하도록 하여야 한다. 지속되어야 한다. 굳어져야 한다. 그게 안전문화다. 안전문화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잘못된 관행과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정부는 지원하고 감독하여야 한다. 어려운 길이다. 그럼에도 가야만 하는 길이다. 눈길에 발자국을 만들면 길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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