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데일리 조남준 기자] 가족 안에서 벌어진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침묵이 강요되고, 사회는 침묵을 강요당했다.

특히 미성년 시절 친족에 의해 성폭력을 겪은 피해자들은 성인이 된 이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고통을 털어놓지만, 그때는 이미 공소시효가 끝나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국회입법조사처가 미성년 친족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를 전면 폐지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국회입법조사처(처장 이관후)는 10일 발간한 '이슈와 논점' 보고서를 통해, 미성년 친족성폭력의 공소시효를 전면 폐지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까지도 없애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만 잊고 용서하라’는 사회적 강요에 맞서 피해자의 진정한 권리구제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지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성년 친족성폭력은 피해자가 수십 년간 신고를 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가족 내 2차 가해, 정서적·경제적 종속, 사회적 고립 등 복합적인 요인이 억압적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자료에 따르면 상담 시점에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가해자 처벌이 불가능한 사례가 전체의 57%에 달한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13세 미만 아동이나 장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13세 이상 19세 미만의 미성년자는 공소시효가 적용되며, 성인이 된 시점부터 기산된다. 이에 따라 사실상 많은 피해자가 처벌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셈이다.

해외에서는 공소시효 폐지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44개 주와 연방 차원에서 아동 성범죄에 대한 형사·민사상 공소시효를 폐지하거나 대폭 연장했다. 특히 피해 사실을 밝히는 평균 연령이 52세라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소급적용이 가능한 ‘윈도우 법’까지 도입했다.

반면 국내에서는 법무부와 여성가족부가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 문제를 이유로 공소시효 폐지에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입법조사처는 이러한 시각이 친족성폭력의 특수성—가해자와 피해자의 밀접한 관계, 신고 지연의 구조적 원인—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미성년 친족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를 전면 폐지하고 그 대상을 13세 이상 미성년자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 폐지도 병행해 피해자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충분히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