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데일리 조남준 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움직임 속에서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가 흔들리고 있다. 파리협정 탈퇴, 기후재정 약속 철회, 국제협력 차단 등 미국의 후퇴가 가시화되면서, 아시아는 ‘공통의 차별화된 책임(CBDR)’ 원칙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후 리더십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했다.
■ 미국의 후퇴: 국제 기후질서의 공백
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미국의 기후 정책은 급격한 후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고, 녹색기후기금(GCF)에 대한 약속된 40억 달러 지원을 철회했다. 나아가 IPCC 등 국제 과학기구에 미국 과학자의 참여를 금지하고,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탈탄소화를 지원하던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파트너십(JETP)에서까지 탈퇴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기후 리더십을 사실상 해체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파리협정 등 기존 기후체제의 신뢰성과 지속가능성에 중대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 CBDR 원칙: 불균형 책임의 해법
이런 상황에서 ‘공통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CBDR)’ 원칙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공식화된 이 원칙은 모든 국가가 기후변화 대응에 참여하되, 각국의 역사적 배출 책임과 발전 수준에 따라 상이한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CBDR은 1997년 교토의정서, 2015년 파리협정 등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었으며, 특히 개발도상국에게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보장받으면서도 기후 대응을 병행할 수 있는 법적·도덕적 기반으로 기능하고 있다.
■ 아시아의 대응: 리더십을 강화할 때
트럼프의 미국이 기후 무대에서 이탈하는 상황에서, 아시아 지역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아시아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재생에너지 시장이자, 기후변화로 인한 직접적 피해를 가장 먼저 체감하고 있는 지역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 재생에너지 투자국으로 부상했고,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녹색화하며 해외 투자 프로젝트에 환경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공동 채권 메커니즘을 통해 아시아 내 기술이전 및 에너지 전환을 지원하고 있으며, 한국은 배출권 거래제도(ETS)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을 제도화하고 있다.
■ 기후금융과 기술이전: 실질적 행동이 필요
기후 행동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신개발은행(NDB) 등 지역 금융기관들이 저탄소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아시아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은 매년 1조 1천억 달러의 기후 재정이 필요하다는 평가도 있다.
이에 따라 2024년 호주가 2억 달러를 지원한 ADB의 혁신금융기구(IFFCAP)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이 기구는 민간자본 유치를 통해 보다 많은 기후금융을 조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한 기술이전은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에 있어 또 다른 핵심 축이다. 일본, 한국, 중국 등의 선진 기술 보유국이 아시아 내 협력을 통해 청정기술을 확대 공유할 경우, 지역 전환은 보다 가속화될 수 있다.
■ 다자 거버넌스와 탄소시장 통합의 기회
ICLEI와 같은 초국가적 지방정부 네트워크는 도시 수준의 지속가능성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아세안, 한중일 3국 협력, 기타 역내 플랫폼을 통해 국경을 넘는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와 탄소 시장의 통합이 추진된다면, 지역 거버넌스는 더욱 탄탄해질 것이다.
한국의 배출권 거래제는 이미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90%를 포함하며, 아세안 국가들도 각기 다른 단계에서 탄소시장 구축을 진행 중이다. 이들 시장을 연계하면 국경 간 협력이 확대되고, 기업의 배출 감축 인센티브도 높아질 수 있다.
■ 아시아의 연대가 곧 기후 리더십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복귀는 전통적인 기후 리더의 후퇴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아시아 국가들이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기회의 창이기도 하다. CBDR 원칙을 기반으로 한 지역 차원의 협력, 금융과 기술의 공유, 비국가 행위자 참여 확대를 통해 아시아는 지속가능한 발전과 기후 대응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
아시아가 미국의 공백을 메우고, 스스로 기후 거버넌스를 주도하는 ‘리더의 자리’에 설 수 있을지는 지금 이 순간의 결단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