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데일리 조남준 기자] 쿠팡이 산업재해 발생 시 회사의 과실 판단부터 유족 대응, 합의 절차까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이른바 ‘산재 은폐 매뉴얼’을 작성·운용해 온 정황이 드러나 파장이 커지고 있다. 국회에서는 조직적인 산재 은폐 의혹과 국회 기만 행위에 대한 국정조사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이 확보한 쿠팡의 ‘위기관리 대응 지침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산업재해 발생 이후 ▲회사 책임 판단 ▲유족 대응 ▲언론 및 수사기관 대응까지를 포괄하는 전사적 대응 체계를 운영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보고서는 사고 대응 절차를 ▲사고 발생 ▲병원 대응 ▲장례식장 대응 ▲언론 대응 ▲경찰 대응 ▲고용노동부 대응 ▲국회 대응 등 7개 세부 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별 대응 요령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특히 ‘병원 대응’ 항목에는 피해자 가족을 위로하는 동시에, 가족 구성원 가운데 우호적인 소통 채널을 확보해 기대치를 관리하고 회사에 의존하도록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유족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관리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례식장 대응’ 항목에서는 산재 은폐 정황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유족 대표를 중심으로 합의 및 지원 가능성을 탐색하고, 장례 기간 동안 유족 주변을 밀착 관리하며, 노조 등의 문제 제기는 허위 주장으로 규정해 적극 반박하라는 지침이 담겨 있다. 산재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지 않도록 정보를 차단하고, 사안을 조기에 봉합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정혜경 의원은 “쿠팡 관계자들이 장례식장에 상주하며 유족을 관리하는 모습은 의원실 보좌진이 직접 확인한 바 있다”며 “의원실 방문 사실을 확인한 뒤 합의금을 상향 제시해 산재를 덮으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고 밝혔다. 해당 매뉴얼이 실제 현장에서 실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설명이다.
정 의원은 또 “보도에 따르면 쿠팡 김범석 의장이 2020년 노동자 산재 사망과 관련해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며 “이처럼 산재 은폐 매뉴얼이 전사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쿠팡은 지난 국회 청문회에서 관련 매뉴얼의 존재를 ‘모른다’고 답변했다. 이는 명백한 국회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최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에서도 쿠팡은 대부분의 자료 제출을 거부했고, 실질적 책임자인 김범석 의장과 박대준 전 대표 등 핵심 인사들이 모두 불출석했다”며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통해 조직적인 산재 은폐와 국회 기만 행위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