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데일리] 탄소중립으로 세계 에너지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각 나라가 처한 여건에 따라 패러다임 전환의 여러 가지 과제들이 있겠지만, 국내·외 전문연구기관들은 한목소리로 전력망 확충을 공통의 핵심과제로 언급하고 있다.
화석연료의 탈탄소화로 인해 전력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한편, 이를 무탄소로 충당하기 위한 간헐성·변동성·무관성의 재생가능에너지를 전력망에 안정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들 전력을 수요지로 송전할 수 있어야 화석연료 대체를 통한 탄소중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상황도 비슷하다. 외형상 탄소중립의 목표수치나 재생가능에너지 혹은 원전의 보급목표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지만, 정작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에도 전력망 적기 확충이 제일 시급한 핵심과제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전력수요의 수도권 편중이 심해 수도권 송전망 자체가 이미 포화상태에 있다. 여기에 전기차, 데이터센터, 반도체 증설 등의 새로운 전력수요가 수도권지역에 집중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반면에 현재의 발전설비조차 송전망 부족으로 이미 송전제약에 걸려 있고, 향후 증가할 재생가능에너지와 원전은 모두 수도권과 먼 지역에 집중돼 있다. 아무리 재생가능에너지나 원전을 증설하더라도 그 전력을 수송할 송전망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는 셈이다.
최근 정부가 서해안 HVDC 등 전력망 확충을 위한 특단의 대책과 관련 법을 마련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인식의 소산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는 구별되는 특수 상황을 고려한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우선,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전력망 확충계획의 중요성을 제고하되, 계획수립의 순서를 바꿀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발전설비 계획 후에 전력망 계획이 진행되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그 반대로 진행하거나 최소한 병행해야 한다.
둘째, 현재 전력망 계획을 포함한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하나의 단일안으로 하기보다 다수의 시나리오 안으로 설정하고, 일정 주기로 재점검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는 수도권 수요의 분산 상황이나 재생가능에너지 입지의 불확실성 때문이기도 있지만, 향후 전기차 보급, 열, 수소활용 등에 따른 비전력부문과의 섹터 커플링에 따라 전력망 상황이 중장기적으로 변화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력망 확충 시나리오별 경제성 등 비교검토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필요하다.
셋째, 전력망 계획은 물론 운영 면에서 송전과 배전 간의 연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재생가능에너지 등 분산형 자원의 70% 정도가 배전망에 접속되고, 이에 따라 배전망의 전력 흐름 및 과전압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에도 배전망은 전체 송전계통의 안정성 하에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에 양자 사이의 연계협력과 정보공유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한전은 배전망, 전력거래소는 송전망을 각각 분담하는 구조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이러한 전력망 확충의 실행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수용성과 재정적 안정성 그리고 추진 거버넌스 문제다. 전력망 확충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 사회적 수용성이란 점을 고려하면, 최근 정부의 특별법 추진 등을 토대로 민간 외주의 전력망 건설이나 새로운 유인 보상 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전력의 적자로 인해 자금확보 및 조달비용상 애로를 겪지 않도록 한전의 망 사업 부문을 별도의 독립공사로 하여 현재 한전의 재무적 제약조건이나 사업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현재 전력거래소와 연계하거나 통합하여 설비 계획과 전력망 계획, 송전망과 배전망 운영간의 연계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안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전력망 확충사업의 중립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패러다임의 전환은 기존의 사업방식과 구조를 과감하게 개혁할 때 가능했다. 에너지 패러다임의 전환 그리고 그 핵심으로서 전력망 혁신 역시 기존의 방식과 구조를 개혁해야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이러한 개혁 없이 막연한 기후정치나 서류상의 감축목표 수치만으로는 탄소중립 달성이 어렵다는 현실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고 직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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